서미경과 신격호의 세째부인 서미경은 누구?
서미경과 신격호의 세째부인 서미경은 누구?
서미경과 롯데, 서미경은 누구?
서미경은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어려서부터 아역배우로 활약했으며 금호여중 재학 중 1972년 제1회 미스롯데 선발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롯데제과의 CF에 등장해 인기를 누렸다. 이후 여러 편의 영화에 출연하여 배우로 활동하다가 1981년 돌연 연예계 활동을 중단하였다. 오빠는 서진석 前 유원실업 대표, 유니플렉스 대표이다. 1983년 배우자가 따로 있는 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와의 사이에 딸 신유미를 두었다. 신유미는 롯데호텔 고문이다. 위키백과
그동안 베일에 가려있던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이자 총괄회장의 세 번째 여인, 서미경(57) 씨가 19일 법원에 출두할 예정이어서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답니다.
1981년 일본으로 떠난 서미경 씨는 혼인신고 없이 신 총괄회장과 사실혼 관계이지만, 신 총괄회장의 각별한 배려로 수 천억 원대로 추정되는 롯데 계열사 주식과 부동산을 갖고 있다고합니다.
이날 법원에 불려 나오게 된 것도, 사실 신 총괄회장이 서 씨와 그녀의 딸 신유미(34)의 '몫'을 챙겨주는 과정에서 탈법 혐의가 불거졌기 때문이랍니다.
롯데그룹 가계도
신격호 회장은?
1941년 일본으로 건너간 신 총괄회장은 1948년 6월 롯데의 상징이자 뿌리인 '껌'을 바탕으로 마침내 자본금 100만엔, 종업원 10명의 주식회사 '롯데'를 세웠다.
대한민국 울산광역시 출신의 대한민국과 일본에 있는 롯데그룹의 창업주이다. 본관은 영산 신씨. 일본 이름은 시게미츠 타케오(重光武雄).
홀수 달에는 한국에서, 짝수 달에는 일본에 머물며 그룹을 경영해 ‘대한해협의 경영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와세다 화학공학과를 졸업했다. 현재는 일본에서 결코 많지 않은 재산순위이고 국내에서도 그리 높지 않지만 2006년 포브스지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신격호 회장 일가의 재산은 약 45억 달러로 아시아 재벌家 136위이었고 1989년도에는 일본 20위였다. 이때는 일본 부동산 거품의 절정시기라 부자 순위 대부분이 일본 부동산 거물들이었고 Over 10 Billion에는 일본인 2명이 유일했고, Over 5 Billion에는 일본인 3명, 독일인 1명, 스웨덴인 1명, 캐나다인 2명이 전부였다. 하지만 얼마안가 몇 년 후 거품경제가 꺼지면서 귀신같이 평가 가치들이 사라졌다. 또한 이 순위는 쉽게 말해 재벌家처럼 한 일가의 재산을 측정한 것이라 그렇지 않은 미국이나 유럽의 자수성가형 부자들은 측정되지 않았다. 사실포함해도 당시에는 일본의 부자들이 더 컸지만.
1941년 부인 노순화(1951년 사망) 씨를 비롯해 가족과 고향을 모두 뒤로 한 채 성공하겠다면서 일본으로 밀항을 한 신격호는, 일본에서 공부를 하며 꿈을 키웠다.
성실함을 인정받아서 하나미쓰라는 사람이 5만 엔이라는 거금을 빌려 주면서 공장을 해보라고 했다. 이 돈으로 전쟁통에 수요가 충분했던 커팅오일과 밥솥을 만드는 공장을 차려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의 공장이 폭격을 당해서 완파되는 바람에 완전히 쫄딱 망했다. 다시 하나미쓰에게 빌려서 다시 커팅오일을 공장을 운영하는데 1년 반 뒤에 다시 미군의 폭격으로 망했다. 1945년 광복이 되었고, 하나미쓰도 살길을 찾으라 위로를 하며 거액의 투자금을 포기한다. 진짜 자살해도 할 말이 없는 처지에까지 몰린 신격호였으나 이대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고, 죽을 땐 죽더라도 자신에게 거금을 빌려준 하나미쓰에게 빌린 돈이라도 갚자는 심정으로 일어섰다. 1946년 와세다고등공업학교 화공학부를 졸업하고, 다른사람에게 돈을 빌린 후 이번에는 세탁비누, 세숫비누, 포마드 크림 등 유지류를 만드는 공장을 차렸다. 다행히도 장사는 상당히 잘 되었다. 솥단지 하나로 시작해 1년 반 만에 하나미쓰에게 빌린 돈을 모두 갚고 자신에게 돈을 빌려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집 한 채까지 선물했다.
이후 신격호는 약간 남은 밑천으로 히카리 특수화학연구소를 차리고 유지류나 특수고무같은 물질들을 연구하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당시에 시판되고 있는 껌들을 죄다 사다가 한번씩 다 씹어보고 각각의 껌들에 한두 가지씩 존재하는 장점들을 모두 집약해서 껌을 개발했다. 그런데 신격호가 이렇게 개발한 껌이 인기가 엄청 좋아서 과자점 주인들이 서로 납품하겠다고 신격호의 연구소 앞에서 새벽부터 줄을 섰다. 이에 신격호는 투자자를 모집해서 본격적으로 회사를 차려서 껌을 팔기로 했는데 그것이 롯데그룹의 효시였다. 껌이 엄청나게 잘 팔렸기 때문에 신격호는 거대 재벌로 성장할 수 있었다.
서미경은
18세이던 1977년 제1회 미스 롯데로 선발돼 하이틴 영화에 출연하는 등 연예계에서 활동했던 서씨는 1980년대 초 돌연 종적을 감췄다. 1983년 신 총괄회장과 사이에 딸 신유미 씨를 낳았으며, 혼인신고는 하지 않은 채 사실상 그의 세번째 부인이 됐다.
롯데비리 재판 탈세혐의는 어떻게?
롯데건설과 유원실업은 법적으로 특수관계인이 아니어서 자산거래가 공시 대상이 아니다. 이 때문에 외부에 거래 내역이 알려지지 않은 이 거래를 통해 비자금이 조성된 정황이 있는지 검찰이 살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서씨와 딸 신유미(33) 호텔롯데 고문이 지분을 보유한 유원실업은 롯데의 멀티플렉스 롯데시네마의 서울·수도권 매점을 운영하던 회사다. 한때 200억원대 연매출을 올린 것으로 알려져 일감 몰아주기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답니다.
서미경과 신격호의 세째부인 서미경은 누구?